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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CKHAUS, Wilhelm(16th Mar. 1884 ~ 5th Jul. 1969)

[ Lion of the keyboard ]

1. Curriculum Vitae

[ Left Photo ] Backhaus at 22-year-old

   우리가 아는 거장들은 대부분 독일계 작품들을 잘 연주했지만(아니, 독일계 작품들을 잘 연주하지 못하면 거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해야 겠지만 ^^), 의외로 순수한 독일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 피아노 쪽에서는 모이세이비치, 호로비츠리히테르, 오보린 같은 러시아계, 제르킨이나 루빈슈타인 같은 유태계, 헤스나 커즌 같은 영국계 등 다양한데, 이 점에서 피셔, 켐프와 박하우스는 드물었던 순수한 독일인이며, 박하우스는 특히 독일 고전파의 연주에서 거의 타고났다고 평가받은 독일계의 전형이었다.

   박하우스는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으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가 그를 처음으로 가르쳤다. 그 후에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1891~99년에 알로이스 레켄도르프(Aloys Leckendorf)의 레슨을 받았으며, 189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외제느 달베르(Eugene d'Albert)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리스트의 제자였고, 정평 있던 베토벤 해석가였다. 하지만 이 레슨이 그의 음악적 성장에 얼만큼 도움이 되었는지는 아직까지 다소 논란이 있다.
   1900
, 그는 연주 여행을 시작했으며 니키쉬 지휘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세계 기록 하나를 갖고 있는데, 그가 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그리그 협주곡이 세계 최초의 협주곡 녹음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의 명성은 19058월 파리에서 열린 루빈슈타인 콩쿨 우승 이후 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피아니스트로 여기에 참가했던 대작곡가 벨라 바르토크(Béla Bartók)가 그의 연주에 대해 "박하우스는 정말로 아름답게 연주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뉴욕 데뷔는 191215일이었는데, 그는 '황제' 협주곡을 연주했으며 미국 어디에서나 거장으로 환영받았다. (이미 남미와 아시아, 유럽을 여행한 뒤였다) 음반으로 남아 있는 1954년의 카네기 홀 리사이틀 외에, 최후의 미국 연주 여행은 1962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파이프 담배를 피는 사람이었는데, 연주에만 집중해서 그런지 사적인 에피소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단지 연주, 그 중 독주 뿐이었다. 실내악을 즐겼다는 증거도 별로 없으며, 녹음도 둘 뿐이다. 교육자로서의 경력은 극히 짧고 왕립 맨체스터 음악원(1905), 커티스 음악원(1925~26) 등 몇 안 되며, 지금까지 박하우스의 제자라는 유능한 연주자는 들어 보지 못했다. 1차 대전 때 병역에 복무한 시기를 제외하고, 그는 모든 시간을 무대 연주와 녹음에만 집중했으며, 나치의 통치도 그의 연주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그 덕에 나치 협력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자그마치 4000회 이상 콘서트에 출연했다고 알려져 있다. 박하우스가 죽기 얼마 전에, 안도르 폴데스(Andor Foldes)가 차를 타고 떠나는 그에게 "좋은 일 많이 하셔요"라고 인사하자, 그는 "정말 좋은 말이구만"하고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좋은 일'은 바로 연주였기 때문이다. 그가 무려 85세 때의 일이다. 어쨌건 나이는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칼 뵘Decca에서 유명한 브람스 2번을 녹음할 때, 옆에 뵘이 앉아 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이 친구는 젊은데도 브람스를 잘 연주한다"고 말하여 주위를 폭소시켰다고 한다. 하기야 뵘은 그보다 10년 어리긴 하다. 그가 83, 뵘이 73세 때였지만...
   2
차 대전 후에는 스위스 루가노(Lugano)에 정착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베토벤과 브람스의 위대한 해석자로 존경받았다. 그의 별명인 '건반의 사자왕'은 그 이후 누구에게도 붙은 일이 없다. 최후의 연주회는 1969628일에 있었으며(다행히도 실황 녹음으로 잡혔다), 7일 후 심장마비로 오스트리아 필라흐(Villach)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후 유해는 쾰른(Köln)에 안장되었다.

2. His art & recordings

   그가 미국에 연주 여행했을 때, 어느 비평가는 "그의 테크닉은 신과 흡사하다. 그는 고도프스키를 포함한 몇을 합쳐 놓은 정도의 대피아니스트다"고 단언했다. 젊은 시절에는 그의 기교적인 완벽함은 거의 전인미답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의 모든 Decca 녹음들이 기교적으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SP와 모노럴 시대는 거의 흠이 없으나, 스테레오 시대에는 흠이 가끔 보이며, 특히 1967년 이후의 녹음들(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과 최후의 리사이틀에서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에서는 다소의 쇠퇴를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많은 베토벤과 브람스의 녹음들이 하나의 지표가 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자주 '완벽한 기교, 다소 빠른 템포, 직설적, '으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매력 포인트는 부드럽고 고귀하기까지 한 음색과 깊은 서정이다. 그의 음색의 아름다움은 의심할 바 없이 동시대 피아니스트들 중에서도 일류이다.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 31번의 '탄식의 노래'에서 그가 연주한 1966Decca 음반 이상으로 마음에 닿아 오는 멜로디 라인을 들은 적이 없다. 베토벤 소나타 32번의 2악장에서, 숨막히는 긴장감과 이완의 대조는 어떤 음반도 따라올 수 없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면서 그를 '힘이 넘치는 피아니스트'로만 생각했다가는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길렐스'강철의 피아니스트'라고 부르면서 힘보다는 정서가 넘치는 그의 후기 녹음들에 실망하지 않았다면, 박하우스의 스테레오 시대 녹음들도 이런 이유로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연주는 아직까지도 젊은 세대들 사이에 영향이 남아 있다. 폴리니는 가장 크게 영향을 준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박하우스를 꼽았으며, 코바세비치는 그를 '베토벤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인물'이라 평했을 정도다.

   그의 레코드는 제법 많은데, 1948년까지는 HMV(EMI) 소속이다가 1950년부터 Decca로 옮겼다. 내 기억으로는, 그의 Decca 음반 중 1949년에 녹음된 것은 없다. HMV 시절에는 HMV(, Fred Gaisberg) '기본 레파토리 확충' 시리즈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들을 맡았으며, 소품 녹음들은 Decca 시절보다 이 때가 오히려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어쿠스틱 레코딩(1900~1920년대)에는 독일계 작곡가의 녹음이 매우 적으며, 전기 녹음 시대(1920년대 후반 이후)에 들어와서야 베토벤과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등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이후 그는 자신의 (녹음) 레파토리를 거의 독일 작곡가로만 한정했다. 78회전 시대의 녹음 전부는 일제 음반으로만 구해 볼 수 있으며, 단편적으로는 Pearl, Biddulph, EMI 등에서 발매했다.
   
모노랄 이후의 Decca 시대에는 독일 고전/낭만 외의 작품은 아주 적다. 모노랄 시대에 베토벤의 소나타와 협주곡 전집, 브람스 협주곡 1,2번을 이미 녹음했으며, 1955년 이후에는 스테레오로 이 작품들을 재녹음하는 외에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등의 작곡가들을 녹음했다. 1990년대 초까지 Decca에서는 CD Box set 2개와 낱장으로 그의 스테레오 녹음을 거의 전부 재발매했고 모노랄 녹음도 Historic 시리즈에 일부 들어 있었으나, 지금은 베토벤 협주곡 전집(+모노랄의 디아벨리 변주곡), 소나타 전집과 모차르트 27/브람스 2번 협주곡(Legend series)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폐반되고 말았다[2008년 현재 스테레오 베토벤 소나타 전집이 오리지날 마스터즈 시리즈로 부활했다].

   이 중 첫째로 꼽아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레전드 시리즈의 뵘 협연의 모차르트와 브람스 협주곡이다. 1955년의 모차르트는 담담하지만 감정과다를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낙조(落照)를 보는 듯한 이 곡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으며, 1967년의 브람스 2슈리히트와 협연한 모노랄만큼 기술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부드럽고 무르익은 원숙함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 만화 팬들을 위해 사족을 달자면, 츠다 마사미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에서 아리마가 유키노에게 빌려 주려고 유키노의 집으로 들고 갔던 판이 이 음반의 브람스 2번이다(집이라 아무렇게나 하고 있던 유키노가 아리마에게 옆차기를 하는, 그 유명한 장면이다). 이 만화가는 단행본에서 자기 취미가 고전음악임을 밝혔는데, 이 음반이 유명함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베토벤으로는 협주곡에서 모노랄의 3(뵘 지휘)5(크라우스 지휘), 슈미트-이세르슈테트가 지휘한 스테레오에서는 1번과 4번 쪽이 좋다. 물론 음질은 스테레오 편이 훨씬 좋다. 지금 모노랄 녹음을 본사 발매로는 구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소나타 녹음에서는 소위 '3대 소나타'와 후기 작품들이 뛰어나다. 특히 30~32번은 누구와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 뛰어난 연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늦게 녹음된 편인 일부 '비인기' 작품들은 기술의 쇠퇴가 눈에 띄기 때문에, Decca 본사에서 모노랄 전집도 발매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이탈리아 Decca에서는 모노랄 전집을 발매했는데, 제한적으로밖에 구할 수 없다).
   
브람스 작품으로는 물론 위에 언급한 협주곡 2번이 압권이지만, 모노랄의 1(뵘 지휘)Philips 20세기 피아니스트 시리즈 중의 2(슈리히트 지휘)도 물론 훌륭하다. 후자는 뵘 지휘의 스테레오가 기교에 문제가 있는 점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금 구하기 어려워져 버린 op.118 등을 수록한 소품집도 강하면서 안정감 높은 그의 스타일을 잘 드러낸 연주다. 그리고 뺄 수 없는 것은, 아쉽게도 모노랄이긴 하지만 푸르니에와 협연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이다. 이 연주는 78회전 시대의 슈베르트 '송어'와 함께 그가 남긴 단 둘 뿐인 실내악 녹음이다.
   
다른 녹음들은 주목받는 것이 좀 적지만, 바흐하이든 리사이틀은 개성과 품격이 넘치며, 모차르트 소나타들도 스타일은 조금 낡았지만 안정감 있으며 아름답다. 특히 K.330331은 훌륭하다. 슈베르트 '음악의 순간'과 멘델스존 소품들, 슈만의 협주곡'숲의 정경', 모노랄의 쇼팽 소나타 2번과 연습곡 등이 남아 있다. 쇼팽은 다소 너무 유연성이 덜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요즘은 Testament에서 발매되어 구해 볼 수 있다. 그의 실황 녹음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Philips의 피아니스트 시리즈로 의외로 1954년의 '카네기 홀 실황'이 발매되었다. 베토벤 소나타 5곡을 중심으로 한 연주인데, 스튜디오 레코딩과 비겨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만치 잘 연마된 훌륭한 연주다(아쉽게도 이 피아니스트 시리즈는 지금은 폐반된 지 오래다). '최후의 레코딩'은 연주보다는 역사적인 값어치가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박하우스가 최만년까지 콘서트 출연을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을 엿보기는 쉽지 않은데, 그의 말 중 다소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세 가지를 인용한다.
   
그가 빈의 음악제에서 빈 필과 공연했을 때, 청중뿐만 아니라 악단 전원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수소리가 가라앉자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박하우스는 말했다.

"나는 지금 다시 내 인생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12살 때 처음 무대에 섰을 때 당시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 나이에 대단하다고. 오늘도 역시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의 집에는 아주 슬퍼 보이는 광부 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림을 왜 갖고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내가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일이 그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라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놀랄 만한 테크닉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그는 항상 "단지 음계일 뿐이다. 음계 + α 다"라 말했다고 전한다.

[ Photo ] Backhaus(by Decca)

Links

  1. 카톨릭 사이트 ; 박하우스의 빈 음악제 에피소드(월간 세광피아노에서 인용)

(c) 1999~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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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2nd Aug. 2000
(original English text created 15th Dec. 1999)
Last Update ; 7th Feb.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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