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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SCHER, Edwin(6th Oct. 1886~24th Jan. 1960)

[ a lion's velvet paws ]

Based on contributed material at Classical Music, Vol.2(Sep. 1996)
Corrected at July 2000

Curriculum Vitae

[ Fischer at his young age ]

   프로 연주가에게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기교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단과 목적을 좀 혼동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기교가 좀 모자라 보여도, 충분히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던 연주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에트빈 피셔도 그 중 의심할 여지 없이 한 명이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너무 훌륭하게 달성해서 아직도 거장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스테레오 녹음의 혜택을 받지 못한 모노랄 시대의 연주자다. 스위스 바젤 출생으로, 아버지가 오보이스트인 가정에서 태어나, 4세 때 피아노로 가 한 음을 치고 'G음이에요'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였다. 10세 때 바젤 음악원에서 교육받고,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슈테른 음악원(Stern Conservatory, 현 베를린 음악원)에서 리스트의 저명한 제자였던 마르틴 크라우제(Martin Krause)에게 사사했다. 그는 1905년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모교의 교수로 취임했다. 교육자로 일생 봉사했으며, 다양한 작품의 원전에 의거한 편집 작업 외에 작곡가로 가곡, 피아노 소품 등을 남겼으며, 모차르트나 베토벤 협주곡의 카덴차를 쓰는 외에 편곡도 많다. 지휘자로서는 1926년에 뤼벡 음악협회, 1928년 뮌헨 바흐 협회의 지휘자로서 바흐 작품의 지휘에 노력했고, 피셔 실내 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연주여행했다.
   2차 대전 때는 독일에 거주했지만, 나치 협력의 혐의는 없으며, 인간적으로도 주위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고 한다(리파티가 루마니아에서 스위스로 탈출할 때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카라얀이 대전 종료 직후 이탈리아에서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익명으로 식량을 보내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성격이나 인상 모두 다소 순진[naive]하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하는데, SP 시대 HMV(EMI의 전신)의 명 프로듀서였던 프레드 가이스버그(Fred Gaisberg)의 말은 다음과 같다. "naive and simple, a big blue-eyed, tousle-haired baby of a man, the type that seems to cry out for a mother's care."

   1942, 그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독일의 집이 폭격받자 스위스 뤼체른 호반으로 이사하고 스위스에 귀화했으며 뤼체른 음악제의 지휘자로서도 활동했다. 최만년까지 거장으로 존경받았으나, 말년엔 고혈압과 관절염으로 고통받았고, 55년 이후는 무대에서 은퇴해 뤼체른 음악원에서 가끔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이래서 그의 스테레오 녹음이 없다), 생애의 마지막 몇 달은 거의 불구가 되다시피 했다. 1960124일 취리히의 병원에서 타계했다.

   그는 교육자로서도 뛰어나서 데무스, 바두라-스코다, 바렌보임, 브렌델 등이 그의 제자이다. 브렌델은 "피셔는 설명하기 위해서 피아노에 직접 앉아 계속 반복하여 들려 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가장 크면서,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학생들에게 남겼지요"라고 말한다. 특히 바두라-스코다는 스승에 대해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그가 하는 것은 모두 창조적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은 연주회에서는 모두 발휘되지 못한 느낌이 있습니다... 신경과민이어서, 그는 그 자신의 리사이틀도 거부할 정도였지요." 그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으며, 그가 '편하게 연주할 때'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실황녹음이나 스튜디오 녹음이나 - 매우 긴장해야 하므로 그가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전한다 - 그의 개성을 확연히 알 수 있고 아름다운 해석이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는지 잘 알 수 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현재 남아 있는 것으로는 바흐에서 독일 낭만파까지의 레파토리가 약간 있을 뿐이지만(내가 조사한 한에서는 푸르트뱅글러까지 넣더라도 단지 11명 뿐이다), 그의 레파토리는 실제로는 훨씬 넓어 쇼팽은 물론이고 부조니나 쇤베르크 등의 현대 음악까지 포괄했으며, 니콜라이 메트너(Nicolai Medtner)는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e단조의 가장 뛰어난 연주 중 하나는 1920년대 초 파리에서 피셔가 연주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레코드로 판단하는 한 그의 음악은 조금 기교가 부족한 면은 있으나, 음색은 실로 풍부하여 현대의 기교파 피아니스트들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힘든 매력이 있다. pp에서는 매우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ff에서는 단단하면서도 결코 시끄러운 음향은 아니다. 그의 ff'벨벳 천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놓은 듯한' 음향으로 묘사되곤 한다. 피아니스트 데니스 매튜즈(Denis Matthews)는 바흐의 3대의 쳄발로를 위한 협주곡의 녹음(EMI CDH 7 64928 2, 현재 폐반)에서 피셔와 같이 연주했는데, "관대한 사자같이 위풍당당하며, 사자의 벨벳과도 같은 발의 부드러움과 힘을 가졌다"고 그의 연주에 대해 말한다. 독주 뿐 아니라, 특히 바흐를 연주할 때는 직접 독주와 지휘를 겸할 때가 많았다. 엘리 나이(Elly Ney)는 피셔의 지휘로 연주했던 브람스의 협주곡 2번의 연주를 회상하기도 했다. 실내악이나 리트의 반주자로도 명성이 높다.
   음반은 모두 수준 높으며, 주로 EMI의 레페랑스(Références) 시리즈로 많이 발매되었다. 특히 바흐가 훌륭한데, 1933~36년의 WTC 전곡(EMI)은 정말 훌륭하다. 이 음반은 단순히 최초의 전곡 녹음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로 지금까지 팔리지는 않는다. SP의 특성상 편집을 못 해서 기교에서 흠집이 보이지만, 음악과 뛰어난 음색이란 면에서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외의 바흐 녹음은 협주곡을 자신이 지휘와 독주를 겸한 녹음이 몇 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지휘), 피아노 협주곡 2,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 환상곡 c단조 등이 든 음반이 있으며(EMI), 코랄 전주곡, 환상곡, 토카타 등이 들어간 음반은 특히 음색이 놀랄 정도로 훌륭하고 낭만적이고 격렬한 음악이 흘러 넘친다(EMI).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1,4,5번과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이 든 음반도 빼놓을 수 없다(EMI).
   모차르트는 1991년 모차르트 200주년을 기념하여 협주곡 5곡과 소나타 2, 환상곡 등이 든 3CD가 나왔는데, 그 중 협주곡 24번이 정평있다(EMI). 2003년 현재 이 음반이 폐반된 점이 매우 아쉽다. LP 시대에 협주곡 20을 자신의 지휘 겸 독주로 다시 녹음했는데(EMI) 구반이 연주 자체는 미세하게나마 더 낫지만 음질 문제도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베토벤은 협주곡 35번과 소나타 7,8,23,31,32이 녹음되어 있고(EMI), 지금은 푸르트뱅글러와 협연한 5(3,4번은 독주와 지휘를 겸했다)과 소나타 7번만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황제'는 명연으로 이름 높다. 실황녹음 등으로 소나타 7,8,14,15,21, 30,32번의 녹음이 Music & Art에서 발매되어 있다.
   슈베르트는 방랑자 환상곡, 음악의 순간, 즉흥곡집, 슈바르츠코프의 반주를 맡은 가곡집(EMI)이 있는데, 즉흥곡과 가곡집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1938년의 즉흥곡집 녹음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이 곡의 최고의 연주이다. 브람스는 푸르트뱅글러와 실황녹음한 협주곡 2번이 있는데(DG, Testament), 음질은 좀 아쉽지만 열기 띤 연주를 들려 준다. 이 외에 슈만 환상곡과 브람스 소나타 3(EMI), 푸르트뱅글러의 피아노 협주곡 22악장이 있다(EMI),
   실내악으로는 바이얼리니스트 데 비토와 함께 연주한 브람스의 바이얼린 소나타 1,3(EMI)슈나이더한, 마이나르디와 녹음한 트리오 녹음이 있다. 원래 바이얼린은 쿨렌캄프가 맡았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해 슈나이더한이 대신했다. 이 트리오는 20세기 중반의 최상의 트리오 중 하나였는데, Music & Art의 실황녹음으로 베토벤 '유령', '대공', 모차르트 K.548, 슈만 1, 브람스 1,2번을 구할 수 있다. 이 트리오에서 일시 대역을 맡았던 일에 대한 바두라-스코다의 회상은 피셔의 실내악에 대한 '본질적인 감각'을 암시해 준다.

   피셔가 병으로 연주회에 서지 못하여, 그가 저를 직접 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대역으로 무대에 선 드문 기회였습니다. 그 때까지 느낀 감정을 실어서 프로그램의 브람스 3중주곡의 ff에서 온 힘을 다해 피아노를 울렸습니다. - 피셔 자신이 하던 방식대로였죠. 그러나 몇 마디 뒤에 마이나르디가 연주를 중단시켰습니다. "젊은이, 이건 협주곡이 아니야! 그렇게 크게 연주하면, 현은 전혀 들을 수 없네. 실내악에서 ff는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인 크기야. 무엇보다도 영혼의 내적 힘이 앞으로 나온다면, 피아노가 크지 않고 객관적으로 mf에 상당한다고 해도 가장 큰 힘의 인상을 줄 수 있다네." (from Music & Arts CD-739)


Photo Gallery

1) Miscellaneous photo (photo ; EMI)

 

2) Trio with Wolfgang Schneiderhan and Enrico Mainardi

 
    (1) Photo from Music & Arts CD-739 (2) In trio repertoire playing

Photos from ;

  • Young Fischer, In trio repertoire playing ; APR CD 5502
  • with Wilhelm Furtwängler ; from Record Review, Apr. 1994
  • Miscellous Photos ; EMI CDH 5 66085 2, Testament SBT 1024

(c) 1996~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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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21st Jul. 2000
Last Update ; 24th Sep.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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