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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RNIER, Pierre(24th Jun. 1906 ~ 8th Jan. 1986)

[ Prince of the cello ]

* Curriculum Vitae

    피에르 푸르니에는 카잘스 이후의 명첼리스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랑스파 첼리스트 - 폴 바즐레르(Paul Bazelaire)와 모리스 마레샬(Maurice Maréchal)에서 시작하여 푸르니에, 토르틀리에, 나바라, 장드롱에 이르는 - 의 한 명이자, 아마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음악가들을 표현할 때 쓰는 '우아함' 이란 말을 그처럼 잘 구현한 사람도 드물 것이며, '첼로의 황태자'라는 애칭까지 붙어 다녔으니 얼마나 명예로운 별명인가.

   그는 파리 태생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에서 태어나(그의 동생 장 Jean 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Westminster에 녹음이 많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지만, 9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부자유스러워졌기 때문에 페달을 자유롭게 쓸 수 없어 첼로로 바꾸었다. 1918년 파리 음악원의 앙드레 에캥(André Hekking)에게 사사했고, 명교사 바즐레르에게 후에 배운 것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23년 수석으로 졸업하고, 다음 해에 파리에서 데뷔했다. 19271월에는 콜론느 관현악단의 독주자가 되었으며, 유럽 각지를 순회 연주하기 시작했다. 33년 베를린 필하모니의 초청으로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그로 인해 푸르니에의 명성은 확고하게 되었다. 푸르트뱅글러의 협연으로 연주한 슈만 협주곡 3악장의 녹음이 남아 있다.
   1930
년대부터 그는 실내악에도 주력했는데, 카잘스 3중주단에서 카잘스가 활동을 그만두자 그의 자리를 이어받아 43년부터는 코르토티보와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실내악에 대한 애정은 그가 연주 활동을 마칠 때까지 이어졌다. 41년부터 49년까지는 모교인 파리 음악원에서 가르쳤는데, 이 초기의 레코드로는 EMI에서 최근에 발매한 4장의 세트 음반 외에 마르그리트 롱(Marguerite Long) 및 티보와 연주한 포레의 피아노 4중주곡 2번이 유명하다(EMI).
   
그 이후 그는 연주 활동에 집중하여, 1948년에는 미국, 1961년 소련(로스트로포비치와 함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에 데뷔했고, 우리나라(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 음악회)와 일본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를 연주여행했다. 협연한 지휘자는 푸르트뱅글러 외에 발터, , 쿠벨릭, 카라얀, 클레멘스 크라우스, 첼리비다케, 마르티농, 뮌힝거 등 당대의 뛰어난 지휘자를 거의 모두 망라하며, 무대나 레코드에서 같이 공연한 파트너로는 박하우스, 켐프, 굴다, 루빈슈타인, 슈나벨, 리파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프랑세스카티, 셰링, 시게티 등 거장들이 즐비하다. 만년에는 그의 아들인 장-피에르 - 장 폰다(Jean Fonda)로 음반에 등장한다 - 의 반주로 레코딩을 자주 했다. 1953년에 프랑스는 레종 도뇌르(Région d'honeur) 훈장으로 그의 공적에 보답했다. 만년까지 존경받다가, 우리 나라를 다시 방문하기 직전인 198618일 심장마비로 영광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예술을 한 마디로 말하면 '곡의 우아함을 최대한으로 끌어낸다'. 그의 음과 음악의 흐름은 결코 딱딱하지 않으며, 정말 너무 잘 흘러가서 그가 연주하는 곡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인식은 어느 새 의식에서 사라진다. 그렇다고 좋은 음색만을 추구해서 음악 전체에 대한 배려를 잃는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 점에서 중용을 잘 지키는 그의 음악성이 돋보인다. 카잘스를 들으면서는 그의 인간성과 그가 생각한 곡의 본질에 집중하는 능력에 감동하고, 로스트로포비치에서는 그의 완벽한 기교와 웅장한 스케일에 감탄하는데, 푸르니에는 곡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인식을 늘 새롭게 해 준다. 카잘스 이후의 첼리스트 중 개성적인 점에서 손꼽는 두 사람을 비교하기는 다소 어폐가 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푸르니에 쪽이 레코드로 듣는 한 고전파까지의 레파토리에서는 로스트로포비치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실내악에서 가끔은 위화감을 줄 때가 있지만, 푸르니에에게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으며 본질적으로 실내악에 더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동료들과 잘 화합하는 연주를 들려 준다(이 점에서는 실내악을 특히 좋아하는 내 취향이 다소 개입됐는지도 모르겠다 ^^). 근본적으로 어느 스타일을 좋아하느냐의 문제기는 하지만, 첼리스트에게 매우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 실내악에서 적응력이 다소 떨어진다면 아무래도 마이너스 아닐까.

    그의 레코드는 양도 많으며, 소위 '6대 메이저 레이블'에서 모두 녹음했던 녹음 운 좋은 아티스트다. 데뷔 직후부터 50년대 중반까지는 EMI, 그 말기에는 잠시 Decca가 주축이었으며, 전성기인 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는 CBS에 조금 녹음을 한 외에는 주로 DG의 간판 첼리스트로 활약했고, 그 이후에는 RCA, EMI, Erato, Philips, Sony등 여러 곳에 프리로 녹음을 했다. 내가 작성한 디스코그라피에서만 보더라도, (로스트로포비치처럼 현대 음악 녹음이 많지는 않지만) 소위 첼로의 스탠다드 레파토리를 거의 완전히 망라한다. 물론 DG가 중심이지만, 그 외 이곳 저곳에 녹음한 양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의 고전적 감각과 품위를 살린 것을 꼽는다면, 당연히 원숙기에 녹음한 DG의 음반들이 우선이다. 이런 점에서 푸르니에를 알고 싶은 분들께는, 우선적으로 하이든 2번과 보케리니 B♭장조 협주곡 음반(DG)을 추천한다. 정말 고전적이고 품위가 넘쳐 흐르며, 사용한 판본은 다소 낭만파의 입김이 서려 있지만 연주 자체로는 이만큼 훌륭한 것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그 다음으로는 물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Archiv)이다. 현대 첼로를 사용한 녹음 중에서 카잘스의 전설적인 연주까지 넣더라도 종합적으로 이것 이상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우아하고 균형감 있는 연주가 바흐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이 두 음반에서 푸르니에의 해석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다. 몇 종 있는 드보르작의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셀 지휘 베를린 필의 협연(DG)도 최고의 수준이며, 베를린 필하모닉과 조화를 이룬 점에서는 유명한 음반들 중 단연 첫째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최선의 선택으로 추천할 만 하다. 협주곡을 더 꼽는다면 랄로와 생상 1, '콜 니드라이'(DG)가 명성이 아직까지 높으며, 3종의 '돈 키호테'의 독주에서 셀 지휘(Sony)와 카라얀 지휘(DG)가 이미 정평이 난 음반이다.
    실내악 음반 중에서는 베토벤과 브람스의 소나타들이 먼저인데, 녹음이 여럿 있어 어느 것을 골라내기 어렵다. 베토벤은 전곡 녹음을 3회 남겼는데, 녹음을 감안하면 굴다가 파트너인 스튜디오 음반, 켐프와 파리 공연한 실황을 담은 음반(모두 DG)이 모두 좋다. 피아노가 다소 실수가 있지만,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의 대등한 융합이라는 점에서는 후자가 약간 낫다고 생각한다. 브람스의 소나타는 지금 낱장으로는 구할 수 있는 것이 박하우스와 녹음한 모노랄(Decca) 뿐이지만, 매우 훌륭하며 아직까지 최정상급의 연주다. 다음 가는 것들은 70년대에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및 셰링과 녹음한 일련의 트리오 레파토리인데(모두 RCA), 브람스의 1~3, 슈만의 1, 슈베르트의 1,2이다. 독주적 성격이 강한 소나타만으로는 실내악의 진면목을 알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거장들이 모인 실내악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트리오의 연주를 들어 보시면 실감하실 것이다. 실내악 녹음 중에서는 명성이나 실력이나 최고인 사람들이 모인 이 녹음은, 스테레오 시대에 들어와서는 오이스트라흐 트리오의 베토벤 '대공'과 슈베르트 1번의 녹음(EMI) 이후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만큼 좋지는 않지만 켐프, 셰링과 함께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곡 전집(DG)도 훌륭함은 물론이다. 이 외의 실내악곡은 아들인 폰다와 연주한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DG)가 매우 좋으며, 루지치코바와 연주한 바흐의 소나타집(Erato)도 손꼽힌다. 풀랑 소나타(EMI), 만년의 드뷔시와 마르티누 소나타(Sony)도 이채롭다.
    아쉽게도 그는 소품을 많이 녹음하지는 않았는데, EMI에 있는 2개의 소품집은 무어의 반주이며 질이 매우 훌륭하지만, 모노랄이며 수록곡이 약간 빠진 Introuvable 시리즈 4장 세트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이 단점이다(LP로는 가격이 매우 비싸다). 그 외에는 소품집(DG)이 매우 좋은데, double 음반으로 구할 수 있어 가격으로도 유리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폐반되고 오리지날 마스터즈의 6장 세트로만 구할 수 있다(LP로는 미발매였던 차이코프스키의 '페초 카프리치오소'도 들어갔다는 장점도 있다). 어느 것으로나 그의 우아하고 절제된 솜씨를 만끽할 수 있다.

    훌륭한 예술가가 인간성도 훌륭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푸르니에는 그랬던 모양이다. 성향이나 기질 등이 그와 전혀 달랐던 프리드리히 굴다는 1960년 부근에 30회 정도나 그와 같이 연주하고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녹음까지 했는데, 푸르니에에 대해 다음처럼 회상한다. "그는 나보다 훨씬 성숙했으며 나보다 위였다. 나는 그에게 빚이 매우 많다. 음악적으로 그에게 매우 많이 배웠으며, 그는 나를 친절하고 끈기있게 이끌어 주었다." 굴다는 푸르니에 외에는 이렇게 애정과 존경을 담아서 말한 음악가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하인리히 쉬프(Heinrich Schiff)가 굴다에게 새로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녹음하자고 제안했을 때, 굴다는 "내가 승낙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마십시오. 나는 푸르니에가 너무 버려 놓아서 내게는 불가능합니다"라 대답했다고 한다.

Photos from ;

  • Fournier ; DG 135 132 & DGG 138 669 SLPM(LPs)
  • Cello Concerto by Haydn & Boccherini ; DG 2535 179(LP)

Links

(c) 2000~,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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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29th Aug. 2000
Last update ; 7th Feb.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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