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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IGRO, Antonio(18th Jan. 1918 ~ 1st May 1989)

[ Incomparable ]

* Curriculum Vitae

Photo ; Fayer Studio, Wien (from the front jacket of Vivaldi's Sonata) 

   어느 연주가의 재의 명성과 실제 실력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 '대체로 그렇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으며, 특히 주로 녹음을 한 레이블이 망하거나 발매를 소홀히 하는 경우 아무래도 '접근성' 문제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표본이라면, 아마 주력 레이블인 Westminster가 요즘 거의 활동이 없는 헤르만 셰르혠과 안토니오 야니그로일 것이다. 그나마 셰르혠은 근래 DGTahra에서 적극적으로 스튜디오와 방송 녹음을 재발매하고 있으나, 야니그로는 그렇지도 않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이다. 아버지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원했던(불행히도 1차 대전 때 오른팔을 잃었다) 만큼, 그는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피에르 푸르니에처럼, 안토니오는 처음에 피아노로 시작하였지만 곧 첼로에 매혹되어 이 악기로 바꾸었다. 다행히도, 이 방향 전환은 푸르니에처럼 개인적인 불행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의 진보는 빨라서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카잘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어 그의 추천으로 1934년부터 파리의 에콜 노르말에서 디란 알렉사니안(Diran Alexanian)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대 중반에 에콜 노르말에는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코르토티보, 카잘스, 불랑제 등의 선생들은 물론이고, 동문 중에는 리파티가 코르토에게 발굴받아 와 있었다. 그는 후에 리파티와 방송 녹음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솔로 활동을 1936년부터 시작했는데, 1차 대전이 부친의 인생을 크게 바꾸었듯이, 조금 후에 발발한 2차 대전은 그의 생활 본거지를 크게 바꿔 놓았다. 1939년 휴가 차 유고슬라비아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전쟁 발발로 인해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던 그에게 자그레브 음악원에서 (불과 21세였다) 첼로 교수 자리를 제공했다. 그는 이 때부터 자그레브에 거의 정주하며 이 도시의 음악에 큰 공헌을 했다. 2차 대전 후에 유럽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및 남아메리카까지 국제적으로 여행하면서 독주자의 명성을 확립했다. 에리히 클라이버는 그와 드보르작 협주곡을 협연하고 나서, 그의 연주를 "비견할 사람이 없다"고 간단히 표현했다. 당시 떠오르는 별과 같던 Westminster label에서는 야니그로를 전속 첼리스트로 많은 녹음을 진행했는데, 이 때 이미 그는 명성을 완전히 확립한 상태였다.
   
첼리스트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쉽게도, 1950년대 말부터 그는 솔리스트 디 자그레브(Solists di Zagreb)의 지휘자로 주로 활동했으며 레코드 녹음 기록으로 볼 때 솔로는 부차적으로 밀어 놓은 감이 없지 않다. 1960년대에는 자그레브에서 조직한 방송 교향악단을, 그 후 자르브뤼켄의 방송 교향악단 등의 자리에서 바로크 및 고전 뿐 아니라 리게티 등의 현대 음악을 다루기도 했다. 1960년대는 그가 지휘자로서 Vanguard에 가장 활발하게 녹음을 많이 하던 시대였는데, 1970년 후 내가 아는 녹음 기록은 없다. 그 후 잘츠부르크에서 카메라타 아카데미카를 몇 년 지휘했는데, 의외로 녹음이 보이지 않는다(이 앙상블은 후에 바이올리니스트 샨도르 베그가 맡았다). 그는 만년도 자그레브에서 보내다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밀라노에 돌아갔을 정도로 자그레브를 좋아한 모양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가 이렇게 아끼던 유고슬라비아가 인종 분쟁으로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폐허가 된 사실을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그가 만드는 음악은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묘하게 번져 오고 씹을수록 맛이 나는 느낌을 준다. 카잘스나 로스트로포비치의 강렬함이나 큰 스케일과는 방향이 사뭇 다르다. 나는 그의 비발디 소나타를 매우 좋아하는데, 정말 단정하면서 자연스럽다. 푸르니에가 왜 이 레파토리를 전부 녹음하지 않았을까 항상 아쉬워했던 차에 매우 좋은 음반이다. 드보르작의 협주곡에서 느끼는 것처럼, 가끔은 좀 큰 스케일의 활달함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에게 이런 것까지 기대하기는 좀 무리 아닌가 싶다. 바흐 무반주 모음곡도 별미이고, 이런 해석으로 듣는 베토벤의 소나타는 특히 감탄을 자아낸다. 의외로 잘 어울리며, 로스트로포비치/리히테르 콤비에게 이미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의 레코드는 현재 나와 있는 CD만 본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의외로 양이 많다. 초기 첼로 레파토리를 주로 녹음했을 때는 Westminster, 후기 솔리스트 디 자그레브를 지휘하던 시대에는 RCAVanguard에 있다. 아쉽게도 스테레오 시대인 후기에는 첼로 독주의 양이 그리 많지 않다.
   Westminster
에서는 주요한 첼로 레파토리의 상당수를 녹음했다. 협주곡으로는 하이든 2, 보케리니 B flat장조, 드보르작, 블로흐 '셸로모'와 브루흐 '콜 니드라이'가 있으며, 소나타는 바흐와 비발디(6곡 전체로는 세계 최초의 녹음이다), 베토벤 5(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던 카를로 체키가 파트너. 그는 마이나르디전곡에서도 피아노를 맡았다), 브람스 1,2(트리오 파트너던 바두라-스코다와 함께),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에바 볼만이 파트너)가 있고, 에우제니오 바뇰리의 반주로 소품집, 이탈리아 소나타집, 슈만과 슈베르트의 앨범까지 3장을 녹음했다. 이 많은 실내악 중에서는 바흐와 비발디를 우선 권하고 싶다. 베이롱-라크르와가 맡은 배경도 대단히 건실하다. 다음으로는 그의 우아한 실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레파토리로 프레스코발디의 토카타, 보케리니와 로카텔리의 소나타를 연주한 이탈리아 소나타집이 가장 맘에 든다. 에리히 클라이버와 1955년의 드보르작 협연이 실황으로 남아 있는데, 내 귀에는 의외로 이 실황이나 딕슨이 지휘한 스튜디오 녹음이 모두 큰 매력이 없었다. 실내악 및 협주곡들 외에 물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뺄 수 없는데, MCA에서 1990년대 중반 재발매했다가 그나마 금방 폐반돼 버렸다.
   3중주 레파토리는 바두라-스코다 및 장 푸르니에(피에르의 동생)와 녹음했는데, 베토벤 1,3,4,6('유령''대공' 포함), 브람스 1, 드보르작 2,5(둠키), 슈베르트 1,2, 모차르트 전 6, 하이든 7곡 등이 남아 있다. 젊은 시기의 적극적인 바두라-스코다의 모습과 함께 활기와 품위가 공존하는 독특한 앙상블을 들을 수 있다.

   그의 후기 녹음들은 지휘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CD로 발매된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기의 몇 안 되는 첼로 독주를 놓치기는 아쉽다. Vanguard에 있는 데무스와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 전집 및 벨트라미가 반주한 소품집(안타깝게도, Westminster에서 녹음한 곡들과 상당수 수록곡이 겹친다) 스테레오의 좋은 음질과 함께 현재 CD를 구할 수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 한데, 매우 우아하고 취향에 따라서는 푸르니에의 걸작들과 충분히 견줄 만 할 것이다. RCA에는 협주곡집이 하나 뿐인데, 지휘를 겸하여 보케리니의 B flat 장조, 비발디의 2곡을 녹음했다. 보케리니는 두 번째 스튜디오 녹음이 되는 셈인데, 내가 그를 처음 접한 음반으로, 매우 훌륭하다. 푸르니에의 DG녹음을 먼저 접하지만 않았어도 주저 없이 최고로 추천했을 것이며, 시쳇말로 바로 '삘 받은 녀석'이다. RCA 녹음 중 현재 유일하게 CD로 구할 수 있는, 프리츠 라이너의 긴장감 있는 해석과 어울린 R.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를 빠뜨릴 수 없으며, 브리튼 '심플 심포니' 등을 담은 현악 옴니버스 음반(RCA) 중 쿠프랭의 '연주회용 모음곡'에서 그의 독주를 들을 수 있다. 지금 Vanguard에서 지휘 음반도 상당량을 CD로 구할 수 있지만 내겐 거의 없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만 더 하자. 2차 대전 직후에 이탈리아 첼리스트들의 예술은 바로 옆 나라 프랑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못 본 감이 없지 않다. 프랑스파의 명단은 국제적 선두 주자 푸르니에를 비롯하여, 폴 토르틀리에와 앙드레 나바라를 거쳐 모리스 장드롱까지 쟁쟁하다. 유명한 이탈리아 첼리스트라면 엔리코 마이나르디를 시작으로 야니그로와 아마데오 발도비노(Amadeo Baldovino)를 들 수 있는데, 현재 3중주 이상의 실내악을 제외한 독주 레코드를 얼마나 CD로 구할 수 있는가로 기준을 삼는다면 이 세 사람을 모두 합해 봤자 푸르니에 한 사람에게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내 개인 취향은 아직까진 푸르니에에 가까우나, 그렇다고 마이나르디나 야니그로가 푸르니에에 비해 뚜렷하게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야니그로의 경우 일반적인 인기가 푸르니에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거의 레코드를 얼마나 자주 접할 수 있었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점이 없지 않다. Westminster가 이리저리 매각되다가 (LP 뿐 아니라) 근래 CD도 거의 내지 못한 탓이 크기 때문인데, 이건 실력이라기보다 ''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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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06~,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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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24th Jan. 2006
Last update ; 26th Ja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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