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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olf Serkin(28th Mar. 1903~8th May 1991)

[ The piano has always been less interesting to me than the music ]

Curriculum Vitae

[ Photo from Philips Homepage ]

    피아니스트들은 독주자가 될 생각을 하고 독주자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자신이 실내악이나 반주에 알맞음을 깨닫고 그 길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 반대는 상당히 드문데, 그 중 가장 성공한 경우는 아마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일 것이며, 음악 가족으로서도 20세기에 가장 돋보이는 특이한 사례다.

    제르킨은 1903년 보헤미아의 에게르(Eger)에서 유태계의 러시아인 가정에 태어났다. 4세 때부터 성악가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9세 때 빈으로 나와 리햐르트 로베르트(Richard Robert)에게 피아노를, 마르크스(Joseph Marx)에게 작곡을 배웠다(이 때 조지 셀도 동문이 되었으며, 미국에서 협연한 레코드가 많다). 12세 때 빈 필하모닉과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협연할 정도로 재능이 알려졌는데,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다.
   부시 가문과 인연이 맺어진 것도 이 무렵인데, (내가 들은 얘기로는) 제르킨이 어느 곳에서 연주했는데 그 때 객석에 아돌프 부시(Adolf Busch)가 앉아 있었다. 그 곳의 반응에 실망한 제르킨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려고 역으로 갔는데, 제르킨의 재능에 놀란 부시는 자신의 반주를 부탁하려고 제르킨이 출발하기 직전에 간신히 역에서 그를 붙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거의 우연하게 만난 두 사람은 그 후 32년간 같이 연주한다. 베를린에서 데뷔할 때 부시 지휘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관중들의 성원에 앙코르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는 말은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이다. 기막힌 앙코르였으며 청중들에게 전연 뜻밖의 보너스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아마 역사상 가장 긴 앙코르일 줄 믿는데, 기네스북에 오를 만 하지 않을까?). 또 다른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제르킨이 처음 부시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겨우 만 네 살이던 부시의 딸 이레네(Irene)는 단번에 "제가 크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믿거나 말거나, 바이얼리니스트로 아버지의 실내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했던 이레네가 1935년 제르킨과 결혼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여, 아돌프 부시와 그의 형인 지휘자 프리츠(Fritz; 1890~1951), 동생인 첼리스트 헤르만(Hermann; 1899~1972), 딸 이레네와 제르킨, 그들의 아들 숀(호르니스트)과 유명한 피아니스트 피터(Peter; 1947~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음악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 품위 있는 귀족적인 단정한 연주로 높이 평가받던 아돌프 부시의 명성이 높아짐과 함께, 거의 그의 전속 반주자로 일하며 헤르만 부시를 포함한 트리오, 부시 현악 4중주단과 협연, 그리고 부시 실내 관현악단의 협연자로 제르킨의 명성도 전 유럽에 퍼졌으며, 30년대 초부터 부시와 함께 HMV에서 브람스 실내악곡의 상당수, 베토벤과 슈베르트, 슈만 등을 녹음했다. 이 중 많은 수가 지금까지도 명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의 유태계 혈통을 나치 독일에서 그냥 봐 줄 리가 없었다. 1939년까지는 유럽에 머물렀으나, 결국 부시 일가와 제르킨은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1939년 커티스(Curtis) 음악원 교수로 취임했고, 북동부 버몬트(Vermont) 주의 길포드(Guilford)에 거주하며 1950년 근교 말버러(Marlboro) 음악 축제를 시작하여 부시와 공동으로 주재하다가 부시가 세상을 떠나자 음악제를 자신의 말년까지 이끌어 나간다. 이 음악제는 미국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음악 축제 중 하나이며, 제르킨의 초청으로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지휘 매스터 클래스를 맡은 파블로 카잘스 등 저명한 음악인들이 즐비했다. 음악가들은 이 음악제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독주자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장인 부시가 1952년 죽은 뒤부터이다. 사실 40년대 말부터 미국 Columbia에 협주곡 녹음을 시작했으나, 1953년 카잘스와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집을 완성한 이후는 거의 독주곡과 협주곡 연주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이 때부터는 실내악 녹음은 말버러 실황을 제외하면 매우 드물며, 내가 아는 실내악의 스튜디오 녹음은 1963부다페스트 4중주단과 녹음한 브람스와 슈만의 5중주곡, 1982년 로스트로포비치와 협연한 브람스 첼로 소나타 2곡 뿐이다. 이렇게 독주곡에 집중한 그는 미국 뿐 아니라 다시 유럽으로도 연주 여행했으며, 우리 나라와 일본을 포함하여 전세계를 다니면서 평론가들에게 절찬받았다. 그는 1988년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및 시카고 심포니와 베토벤 '황제'를 협연했는데, 이것이 공개 연주로는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그 후는 암과 투병하다가, 마침내 19915월 길포드 자택에서 생애를 마쳤다.

   제르킨은 "내가 피아니스트긴 하지만, 피아노는 항상 음악 자체에 비하면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가 커티스 음악원에 재직할 때도 바흐의 칸타타를 연구하기 위해 1년 휴직하기도 하는 등, 피아노라는 악기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것과는 그의 태도는 좀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래선지, 그가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음향은 보통의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거의 최만년의 녹음에서도 놀랄 만큼 기교에 문제가 없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의 손은 보통 피아니스트들의 '솜씨 있어 보이는' 손하고는 거리가 멀고, 투박하고 마치 막일에 익숙한 노동자의 손을 연상시켰다고 한다(밑의 칼라 사진을 보면, 그의 굵은 손가락이 잘 보인다).
   
레코드로 듣는 한, 부시의 반주자던 시기의 것들은 투명하면서 상식적인 음을 들려 주는데, 카잘스와 같이 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에서는 벌써 분명히 변화가 나타나며, 스테레오 시절의 뭔가 찌르는 듯한 그 특유의 음향이 들린다. 사실 이 레코드의 대부분이 부시가 죽은 다음 해(1953)에 녹음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랄 만하다. 1960년대 초반에는 벌써 이 변화가 다 끝난 상태였다. 물론 녹음 회사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의 명연 중 하나인 브람스 피아노 5중주곡은 부시 4중주단과 녹음한 1938년의 레코드(EMI)1963년 부다페스트 4중주단과 녹음한 것(Sony)을 비교하면 피아노의 음향이 놀랄 만큼 차이가 많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최만년의 DG 녹음에서는 다시 초기를 연상시키는 둥글며 모가 나지 않은 음향이 들리는데, 한 사람의 녹음임을 감안하면 이런 음향의 변화는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초기의 실내악적인 투명하고 잘 어울리던 음향이, 중기에서는 다소 날카롭고 그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 같은 소리로 바뀌었다가, 만년에는 부드러움이 더해져서 둥글고 따스한 소리로 정착한 것 같다.
   
내가 본 어느 일본 평론가가 쓴 책에는, "제르킨은 실황을 듣지 않고 레코드로만 평가하면 오해를 부를 소지가 크다"고 한다. 그의 말은 제르킨이 녹음에 극히 신중하고 성실하며, 스튜디오 녹음은 특히 조형을 갖추려 하기 때문에 실황과 레코드가 많이 달라진다는 얘기였다. 그는 실황에서 '이상야릇하게 몸을 움직이며, 그에 따라 음악이 크게 기복을 그린다'는 평을 받았으며, 흥얼거리는 버릇은 레코드에서도 가끔 알아들을 수 있다. 지금은 어차피 그의 실황을 보기는 불가능하니 레코드로만 판단해야 할 텐데, 레코드에서는 단정하고 꼼꼼한 점이 많으면서도 어딘가 음악이 그 균형을 박차고 나올 것 같은 느낌이 간혹 든다. Sony의 베토벤 '비창'의 스튜디오 녹음을 들어 보면, 3악장에서 특히 무언가 맥동하는 힘, 조형의 밑에 감추어진 통제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진다. 내 선배 한 분은, 그의 루가노 실황(Ermitage ERM 110)은 거의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분위기라고 말해 주었다. 확실한 것은, 실황이건 스튜디오건 제르킨은 음악을 듣기 좋게 의식적으로 다듬으려고 애쓰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제르킨의 본성은 자유 분방한 음악에 있지만, 그가 음악인으로서 매우 존경했다는 장인 부시에게 배운 통제력이 실황에는 최소한의, 레코드에서는 매우 단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실황에서는 좀 더 자신을 주장하려는 본능과 몸에 익은 조형 감각이 충돌하는데 비해 레코드에서는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연주를 남기려는 그의 성실함이 의식적으로 조형을 갖추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어쨌거나, 외면적으로 '듣기 좋게' 들리는 연주를 포기한 대신 그가 얻은 것은 강인한 조형력, 그리고 두드러지는 열띤 긴장감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에서는 이는 분명히 장점이며, 그의 정력적이고 열띤 긴장감 있는 연주는 두 작곡가에서 그를 거장으로 손꼽는 중요한 이유이다. 셀 지휘 브람스의 협주곡 2곡을 잘 들어 보면 어딘가 약간 끈적거리는 맛 속에서 끈질기게 한 면으로 파고드는 점이 잘 드러난다. 다른 작곡가들도 물론 독특하지만 이 두 작곡가만큼 매력적으로 들리진 않는데, 특히 잘 맞는 것으로는 슈베르트를 추천하고 싶다.

   그의 음반을 열거하자면, 제르킨 전성기인 50~70년대의 실황 녹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2007년 현재는 BBC 등에서 발매해서 좀 늘어나긴 했다) 좋건 싫건 스튜디오 레코딩을 들 수밖에 없다. 먼저 귀한 실황 음반으로, 1977년 카네기 홀에서 녹음한 '75세 기념 연주회'(Sony)는 꼭 들어 봐야 할 것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연주한 프로그램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제르킨다운 힘 있는 음악이 잘 살아 있는 매우 좋은 연주인데도, 굳이 아쉬운 점을 들자면 이미 실황과 레코드의 차이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들이 누누이 말하는 것처럼, '실황에서 흥얼거리면서 크게 음악을 넘실거리게 만들어 때로는 거칠다는 느낌까지 주던' 제르킨은 이미 아니다. '3대 소나타'를 위시한 베토벤 소나타에서는 특히 1994년에야 발매된 '미발매 스튜디오 녹음'(Sony)을 꼭 추천하고 싶다. 전성기의 30~32번 소나타를 포함하며 전에 발매되지 않았던 1, 6, 12, 13, 16번을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획이다. 다음으로는 '함머클라비어'(Sony)인데, 기백이 넘치는 박하우스의 모노럴, 극히 아름답게 다듬어진 길렐스의 디지털 녹음과 함께 스테레오 시대의 최정상으로 꼽혀야 할 연주다. 협주곡 연주는 우선 조지 셀 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의 2(Sony)을 꼽아야 하는데, 강고한 테크닉과 스케일 크고 장려하게 다듬어진 제르킨 전성기의 음악이 선명하며, 셀의 만년에 전설적이었던 클리블랜드의 앙상블이 어울린데다 Sony 'Essential Classic' 시리즈의 염가 음반이라는 장점까지 있다. 이 녹음들에서 제르킨 최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나만 더 추천한다면 슈베르트 소나타 20(Sony)의 강한 표현을 들고 싶다.
   
실내악이라면 음질을 감안할 때 1963년 자택에서 부다페스트 4중주단과 녹음한 브람스와 슈만의 5중주곡(Sony)을 먼저 추천한다. 모두 부시 4중주단과 협연한 구반이 있는데, 브람스를 비교하면 이 신반에서는 제르킨 자신이 음악의 중심에 서서 튼튼한 음악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열적인 음악이 인상적인 카잘스 협연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집(Sony)과 만년의 부드러운 음악을 알려 주는 로스트로포비치 협연의 브람스 첼로 소나타(DG)도 좋다. 부시와 협연한 것들은 이미 역사적인 음반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모두 부시가 음악을 인도해 나간다는 인상이 짙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브람스의 5중주곡과 4중주곡 1(EMI)인데, 4중주곡의 EMI International versionCD 복각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CD를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레코드 에러'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 외의 녹음을 가능한 한 목록만 열거하자면, 베토벤 협주곡 전집으로는 오먼디/필라델피아와 녹음한 1950년대 초의 모노랄 전집(Columbia), 1,4,5번을 오먼디/필라델피아와, 3,5번을 번스타인/뉴욕 필과 1960년대 초에 녹음한 스테레오 전집(Columbia), 오자와/보스턴 심포니와 디지탈 시대 초기에 녹음한 것(Telarc)를 구해 볼 수 있는데 CD로는 오히려 Telarc 쪽이 구하기 쉬운 편이다. LP도 상관 없다면 Columbia2개도 저렴하고 보기 쉽지만... 브람스 협주곡은 위에서 말한 셀 지휘 스테레오보다 전에 오먼디와 스테레오로 두 곡을 다, 모노랄에 셀의 1번과 오먼디의 2번을 모두 볼 수 있다. 오먼디와 협연한 1960,61년의 스테레오 음반도 꽤 평가가 좋은 편이다. 모차르트의 협주곡은 Columbia에서 셀, 오먼디 및 알렉산더 슈나이더(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제 2바이올린 주자로 유명하다)의 지휘로 9번 이후 대부분의 곡을 녹음했으며 뒤에 DG에서는 아바도/런던 심포니와 협연하여 CD7장 분량을 남겼다. 일반적으로 전자가 추천된다. 멘델스존 1,2번이 특히 인기가 있고, 슈만, R.슈트라우스 '부를레스케'(Sony)등의 협주곡 외에, 역사적인 연주로 정평을 얻은 부시와 협연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EMI)을 들고 싶다. 독주곡으로는 디아벨리 변주곡이 모노랄(Columbia)과 스테레오(BBC 실황)로 있으며, 핸델 변주곡과 레거의 바흐 주제 변주곡(CBS), 슈베르트 즉흥곡 D.935(CBS)과 최근에야 발매된 그의 유일한 쇼팽 스튜디오 녹음인 전주곡 op.28(Sony) 등이 흥미롭다.

   제르킨은 여러 모로 매우 성실한 예술가였다. 안드라슈 쉬프는 악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르킨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 Columbia는 그의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녹음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실현하지 못했는데(Sony는 베토벤 소나타 전집에는 운이 없는 것 같다. 제르킨 외에 굴드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페라이어가 완성시킬지 모르겠다), 그 뒷면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1950년대 초반에 베토벤 소나타 한 곡의 녹음 세션(session)에서 제르킨이 너무 신중하게 녹음해서 Columbia 기술진이 회사 사상 최장 시간을 소모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속도로 녹음하다가는 제르킨이 늙어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 끝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Photo Gallery

  Young age(ca. 1938)   with Adolf Busch(ca. 1931, EMI CDH 7 64495 2)
  ca. 1977(from Sony Classical SRCR 8585)   with Pablo Casals(from Ma vie racontée à A.Kahn, by Casals)

The Resources

  • Main ; an appendix of Eumak-Donga(a Korean music magazine), my records.
  • photo of young Serkin - EMI LP 2C 051-34013
  • Philips Classics ; The 20th century pianists

(c) 2000~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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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10th Nov. 2000
Last Update ; 8th Ju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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