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Home Discography English

* DE VITO, Gioconda(22nd Jun. 1907 ~ 14th Oct. 1994)

[ Queen of the Italian Violin School ]

(First appeared at Classical Forum of Freechal)

Gioconda de Vito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육체적인 지구력이 꽤 필요하기 때문인지, 거장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하지만 현악기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서인지, 특히 바이올린에서는 여자가 꽤 많다.  (첼로에서는 다시 남자가 많은 점을 볼 때,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 20세기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군단은 현재는 정경화나 이다 핸델(Ida Händel)을 위시하여 롤라 보베스코(Lola Bobesco), 그리고 안네 소피-무터, 빅토리아 뮬로바 등을 거쳐 최근의 미도리나 장영주까지 꽤 화려한데, 가장 먼저 국제적인 각광을 받은 사람이라면 지네트 느뵈겠지만, 가장 연장자(年長者)로는 에리카 모리니를 빼면 지오콘다 데 비토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데 비토는 1907년 이탈리아 '발뒤꿈치'인 마르티나 프랑카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뒤에야 본격적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나이가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녀는 사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보다 한 살 위다. 가족은 음악적이었으며, 8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잡은 그녀의 첫 소나타 파트너는 오빠였다고 한다. 그녀는 페사로의 로시니 음악원에서 처음 공식적인 음악 학습을 시작했는데, 14세 때에 졸업장을 받고 최초로 연주회를 열었다. 그 후 1년간에 걸쳐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업을 받았다. 25세 때 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국제적인 연주활동을 개시했고, 30년대에는 연주회와 교수 활동(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병행했다. 자신이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기도 했던 무솔리니는 스트라디바리를 선사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남자에게 그런 값비싼 물건을 받으면 안된다"고 충고했기 때문에 되돌려 보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 덕에 2차 대전 중 독일에서 연주회를 열었으면서도 나치나 파시즘 협력자로 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Testament SBT 1024(Brahms's Violin Sonata release)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7년 그녀는 HMV에서 녹음하기 위해 처음 영국을 방문했다. 영국 데뷔 연주회는 19484월에 있었는데, 빅토르 데 사바타(Victor de Sabata)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과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했다. 40세로 이미 음악적으로 전성기에 있던 그녀의 연주는 대호평을 받았다. 이 협주곡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파토리의 하나였는데, 그녀의 브람스는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같은 해 에딘버러 음악제에서는 베네데티-미켈란젤리 및 마이나르디와 함께 푸르트뱅글러 지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연주했다(푸르트뱅글러의 팬으로서, 이 실황이 녹음으로 남지 않았음이 정말 안타깝다 ^^ 하지만 토리노에서 RAI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은 남아 있다). 다음 해에는 HMV의 프로듀서였던 데이비드 빅넬과 결혼했고, 결국에는 영국 시민권을 얻어 영주하게 되었다. 1950년대 초반 푸르트뱅글러의 피아노 반주로 브람스 소나타를 교황 앞에서 연주하기도 하고, EMI와 녹음 계약도 본격적으로 진행하여 레코딩도 이 시기에 많이 했다.
   
그녀는 1960년대 초반까지 소련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심사위원을 맡는 등 포함해서 거의 전세계에 연주 여행했는데, 1961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11월 스위스 바젤의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연주 활동을 중단한 후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은퇴하는 동안 가끔 런던으로 가 연주회에 (청중으로서) 참석하기도 했지만, 공적인 음악 활동은 전혀 없었다. 1988년 결혼 40년만에 남편을 잃었는데, 1991년에 그녀를 만난 툴리 포터(Tully Potter)에 의하면 남편 빅넬을 '신이 보낸 선량한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고 전한다. 그녀는 1994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Toshiba-EMI TOCE-9316~24(9 CD-set)

   그녀의 공식 녹음은 실제적으로 1948~59년 런던 애비 로드 EMI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LP 12장 분량이 전부다. '2차 대전 후 최고의 여류 바이얼리니스트'라고 불리던 그녀 전성기의 명성을 생각하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가 없는데, 그녀나 남편 빅넬이나 모두, 빅넬의 지위를 이용하여 EMI에 특히 많이 녹음한다든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가 한창 절정기 때 은퇴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이상하게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LP로는 그녀의 레코드를 보기가 쉽지 않다. Testament에서는 회사 발족 초기에 브람스 소나타 3곡을 냈고, LP로는 쿠벨릭과 협연한 바흐 2/모차르트 3번을 내놓긴 했지만1) 후속 발매가 없는 점을 보아 이 점에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하지만 일본은 예외였다. 그녀의 EMI 전 녹음은 LP 전집으로도 나왔으며, CD 시대에 들어와서는 역시 전집으로 두 번 발매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 발매를 라이선스하여 브람스 녹음만 따로 2장 세트로 나오기는 했지만 지금은 폐반되었다고 알고 있다.

   나는 이 일제 전집이 1991~92년 경 우리 나라에 수입됐을 때는 엄청난 가격 때문에 살 수 없었지만, 작년에 재발매되었을 때는 어떻게 운 좋게 구해볼 수 있었다(Top2800¥인 일본의 음반 가격을 생각하면 버짓이지만, 그래도 총 9장에 15000¥이니 결코 싼 레코드라고는 할 수 없다). 전에 얼마간 한국 EMI가 수입했던 바인가르트너나 요한나 마르치(Johanna Martzy)의 일제 발매처럼 5~6장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데, 9장이나 되기 때문에 수입하기도 아마 벅찰 것 같다2). LP로는 그녀의 음반 가격이 장당 최소 20만원을 넘는다고 하니(솔직이 희귀성 때문이다. 이렇게 값이 높을 이유가 또 있을까) 좋건 싫건 금전 효율을 생각하면 이 일제 전집이 최상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나는 브람스의 두 곡의 협주곡 중에는 2중 협주곡이3)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소나타는 거장 에트빈 피셔1,3(LP는 바이올린 소나타 LP 중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녀의 반주를 오래 맡은 티토 아프레아(Tito Aprea)2번을 협연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리히테르와 함께 워낙 굉장한 연주를 들려 주기 때문에 첫째로는 추천 못하겠지만, 모노랄이란 점만 제외하면 피셔나 비토의 팬들에게는 꼭 갖춰 놓아야 할 연주다.
   
베토벤으로는 로망스 2(에레데 지휘)과 아프레아 협연의 소나타 7,9번이 전부다. 그녀가 은퇴 후 베토벤 협주곡 녹음을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고 전하는데, 그녀가 브람스와 베토벤의 협주곡으로 명성을 얻었음을 고려하면 확실히 아쉽다. '크로이처'는 인상이 아주 강했는데, 솔직이 다른 사람들의 연주와 상당히 달라서 들으면서는 다소 당황했다. 로망스는 1948년의 78회전 복각 녹음인데, 솔직이 일본 자체 복각의 질이 '그저 그렇기' 때문에 몇 년 후에 녹음된 마르치의 연주가 더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EMI ASD 429(LP; available by Testament now)
   - Bach concerto no.2 & Mozart no.3,
      with Rafael Kubelik / London Symphony & Royal Philharmonic(Mozart)

   비토는 바흐 협주곡 2번과 모차르트 협주곡 3번을 아주 좋아했던 듯, 40년대 말의 78회전 녹음 외에도 1959년에 쿠벨릭과 다시 녹음했는데1) 이 음반이 그녀의 스테레오 녹음으로는 유일하다. 비싸기는 하지만 아직 낱장 LP로 구할 수 있는데, 바흐는 원전 연주의 시각으로 본다면 거의 엽기 수준으로 템포가 느리다. 1악장이 9:38, 2악장 8:16, 3악장 3:20으로 전체 연주 시간만 21분이 넘는데, 현대 악기 연주의 그뤼미오(8:09, 6:35, 3:00. 전체 17:44)나 수크(7:55, 6:50, 2:45. 전체 15:30)에 비하더라도 거의 거북이 걸음이다. 들으면서 상당히 '황당'했었는데, 모차르트도 (바흐 2번만큼은 아니더라도) 템포가 느린 편이기 때문에 두 곡 모두 '상쾌한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78회전 시대의 구반도 템포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 느린 템포는 확실히 비토의 의도인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좀 당혹스럽기까지 한 연주다.
   
비토는 이 시기에 예후디 메뉴힌과 꽤 많이 녹음했다. 바흐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슈포어, 헨델 등의 바이올린 2대를 위한 곡 등을 녹음했는데, 바흐보다는 실내악곡들에 비토의 여유 있는 템포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이 외에는 멘델스존과 비오티 22번 협주곡과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있는데, 비오티 22번이 인상이 좋은 편이다. 무반주 파르티타는 한 번에 종합하여 녹음하지 않고 샤콘느만 47, 나머지는 50년에 두 번 녹음했기 때문인지 서로 음질도 차이가 있어서 위화감이 있다. 프랑크 소나타도 역시 아프레아와 협연했는데, 크로이처 이상으로 개성이 강해서 적응하려면 좀 더 들어보고 싶다.

< Sources >

  1. 데 비토의 약력 ; Testament SBT 1024(CD) - liner note by Tully Potter
  2. ASD 429(Testament release) image ; from Clapia
  3. 지오콘다 데 비토 디스코그라피 ; 위에서 말한 일제 전집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 외에 그녀가 출연한 녹음은 해적판과 방송 녹음까지 넣더라도 현재 발매된 분량은 극히 적은 편이다.

[ 주 ]

  1. 이 쿠벨릭 녹음의 - '가라오케' 식으로 먼저 오케스트라 부분을 녹음하고 비토가 나중에 바이올린 파트를 녹음하여 덧붙였다는 말도 있다 - 뒷얘기가 재미있다. 이 녹음은 HMV ALP 1856(모노랄)과 ASD 429(스테레오)로 발매됐는데, 비토 자신이 녹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남편(빅넬)에게 간청하여 발매 직후 음반을 회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약 100장 정도가 회수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바람에 초반 발매가 거의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고가로 거래된다는.... (우와!!) 테스타먼트에서 이 음반을 재발매 대상으로 선택한 데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2003년 중반에 수입이 한 때 됐다. 지금은 품절된 모양이지만...
  3. 첼로를 맡은 아마데오 발도비노(Amadeo Baldovino)는 1962년부터 트리에스테 3중주단(Trio di Trieste)의 첼로 멤버로 활동했다. 이 3중주단은 Decca와 DG에 녹음이 상당히 남아 있고, 얼마 전 DG의 Original Masters 시리즈로 녹음 전부가 발매됐다.

(c) 2003~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Music Home Discography English

Created ; 20th Apr. 2003
Last update ; 6th Jun. 200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