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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테르의 한국 첫째(마지막) 독주회의 인상

Contributed in Hitel Classical Music Forum
Written on 21st April, 1994
partly corrected on 10th June, 2001

  내가 고전음악을 본격적으로 판을 사 듣기 시작할 무렵 - 고등학교 1학년 정도 - 에는 서울에서 S.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철의 장막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대단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연주나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에서 그의 실력을 알 수 있었지만, 실연은 정말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서울에 앉아서 그의 실제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1994420,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나는 팸플릿을 보고 비로소 연주될 곡목을 알 수 있었다. 프로코피에프 소나타 2d단조, 스크리아빈 소나타 7,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거울'의 순서였다. 다소 걱정이 되었다. 일단 중간 휴식 전의 두 곡은 내가 전혀 모르는 곡이었고, 후반에서도 다소 리히테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런 긴장을 가지고 시작 시간 2분 전에 3층으로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었다(원래 5분 전에 올라가지만, 두 사람 - **과 그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겠다 - 이 늦었기 때문이다). 정각에서 10분이 지나서야 서서히 불이 어두워졌다. 좀 후에 노인 하나가 서서히 걸어나왔다. 박수가 연주회장을 메웠다.

◀ DG에서 1960년대 초반의 녹음을 모은 리히테르 추모 음반

  자세히 보니, 그 할배는 참으로 당당한 체구였다. 키가 최소한 180cm는 되어 보였고, 그에 어울리는 당당한 몸집을 지녔다. 그의 힘있는 연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는 했지만 손도 크다고 하는데, 둘째와 다섯째 손가락으로 넉넉히 옥타브를 칠 수 있다고 들었다(뒤에 알았지만, 그는 오른손으로 F - A flat - B - D - A flat5음 코드를 아르페지오로 처리하지 않고 단번에 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맞나?). 그의 체구로 보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코피에프의 첫 음향이 들려왔다. Allegro ma non troppo가 시작되자, 그의 음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사실 레코드와 큰 차는 없었다. 엄격히 말해서, 리히테르의 음색은 옛날의 많은 명피아니스트보다 그리 매력 있지는 않다. 그러나 리히테르가 연주하고 있는 Steinway & Sons 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그 피아노 본래의 음향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 같은 피아노로도 우리 나라의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연주를 했을 텐데, 나는 거기서 그런 충실한 음향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얼마 전에 들었던 프랑스의 현역 명 피아니스트 콜라르(Jean-Philip Collard)의 소리와도 차가 컸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피아노 소리에는 빛나는 광채는 없었으나, 대신 속이 꽉 여물은 것 같은 단단함과 약간 어두운 색채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본적인 리히테르의 음은 결코 불안정한 감을 주지 않았다. 1악장을 다 들을 때쯤 되어서야 그의 음색이 이 곡의 약간 어두운 감과 잘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한 인상을 준 것은, 그가 지금 자그마치 79세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그의 몸의 일부처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청년시대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기교가 음반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손과 팔의 움직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한 마디로 피아노를 아주 편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2악장이 시작되었다. 스케르초도 전혀 막힘없이 잘 흘러갔다. 안단테는 첫 주제가 약간 밋밋하다는 감을 준 것이 안타까왔지만, 음울한 기분은 기가 막혔다. 끝 악장인 비바체는 강렬하게 육박해 왔다. 리히테르의 기개가 쫙 펴지는 듯했다. 아뭏든, 이 큰 홀에서 3층까지 ff가 강력하게 들리고, pp도 마찬가지로 잘 울려 올라올 정도라면 보통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소리가 ff에서도 절대로 깨지지 않았다. 그의 프로코피에프가 정평을 얻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집에 있는 그의 프로코피에프 협주곡 1, 소나타 7번을 다시 들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스크리아빈은 내가 원래 곡을 잘 모르는데다가, 이 작곡가와 나는 아직 너무 친하지 못하다. 그래서 잘 친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그다지 '느낄' 수가 없었다.

  휴식 시간 후에 라벨의 곡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히테르의 라벨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다 무너뜨리는 놀라운 연주였다. 내가 지금까지는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을 발터 기제킹로베르 카자드쥐의 절제된 '프랑스풍' 스타일로만 알고 있었다. 어제 들은 리히테르의 피아노 연주는, 내가 가진 이런 생각을 다시 돌이켜 보게 만들었다.
  먼저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이다. 이 곡은 ff의 화음으로 시작되는데, 그가 이 화음을 들려 주자 나는 아연했다. 이 코드가 이렇게 장대하게 들려 올 줄 나는 전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이 양식화(stylistic)된 연주회용 왈츠를 리히테르가 연주한 방법은, 내게 라벨이 이 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필연성을 일깨워 주었다. 이 왈츠가 이렇게 규모가 크게 확대될 줄이야... 그가 왈츠의 음악 본질을 전혀 도외시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의 표현력은 확실히 왈츠란 살롱 음악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었다. 레코드로 두고두고 참고로 하고 싶었으며, 음악 해석의 한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곡은 '거울'이다. 첫 곡 '나방'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기술에 문제가 전혀 없고, 촛불에 날아들어 자신을 태워버리는 듯하게 생각된다. '슬픈 새들' 은 울림을 많이 억제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약간 아담했으면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양 위의 쪽배'는 정말 놀라왔는데, 그 압도적인 흔들림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투철한 긴장감과 관현악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장대한 울림이 나무랄 데가 없다.
  여기서 하도 연주가 훌륭해서였겠지만... 관중들이 이 곡 끝나자마자 박수를 열심히 쳤다. 리히테르가 그래서인지 잠시 나갔다가 몇 번 인사를 하고서야 다시 피아노에 앉았다(나중에 알았는데, 리히테르가 잠깐 쉬기만 할 의도로 일어선 것을 관중들이 오해한 것이었다). 대뜸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가 이어졌는데, 처음 악구에서 나는 다시 놀랐다. 선명한 스타카토와 강한 음으로 음악이 전개되어 가는데, 다소 울림에 흐린 점이 있어서(아마 페달을 세잇단음표 부분에서도 밟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약간 의아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도 얼마 가지 않았다. 이것이 부풀어올라 ff로 되자, 리히테르는 엄청난 힘을 선사했다. 다음의 어려운 빠른 오른손 부분에서 약간 실수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는 실수를 보충할 만큼의 압도적인 힘과 흐름을 들려주었다. 중간의 우울한 선율에서 그의 강약과 선율선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반복음 몇 개를 연주할 때는 짜릿하기까지 했다 - 다시 첫 부분이 되돌아와 점차 고조해가자 그 격렬함, 곡 전체를 궤뚫는 듯한 강인한 힘, 돌진하는 추진력은 이 곡이 피아노곡인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당연히 관중들은 열광했다. 박수를 한 3-4분 받고서야 리히테르는 마지막 곡인 '골짜기의 작은 종'을 연주했다. 이 곡도 약간 어두운 듯한 감이 지배적이었는데, 선법이 지배적인 선율을 울리는 방법은 아주 독특한 풍미가 있다. 그렇게 감정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며, 꼭 중간을 지켰다고나 할까? 다채로운 음색을 요구하는 이 곡에 꼭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안정도가 높았다.

  관중들은 박수 세례를 보내 그의 훌륭한 연주에 답했다. 리히테르는 최소한 5번 이상은 다시 나왔다. 자신의 연주에 대체로 만족했는지, 앙코르는 없었다(리히테르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면 앙코르를 한다고 한다).

  2만원이 아니라, 4만원을 내고 보았더라도 아깝지 않은 연주회였다. 혹시 실황녹음을 했다면 주저없이 사야겠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16세 때 리스트의 곡을 어렵지 않게 연주했다고 하는데(더군다나 거의 독학으로), 24세인 지금 뭐하고 있나?

ps. 나는 지금은 연주회에 거의 가지 못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연주를 능가할 실황은 들어 보지 못했다.

(c) 1994~ , 이영록 ; 링크는 자유지만, 인용하시려면 우선 제게 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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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ed ; 16th Ju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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